작성일 : 17-08-23 02:33
[뉴시스 2017.05.12.] 유지숙 명창 서도소리, 울면서 웃는 객석…‘기원과 덕담’
 글쓴이 : 홈피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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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2017.05.12.] 유지숙 명창 서도소리, 울면서 웃는 객석…‘기원과 덕담’

【서울=뉴시스】신동립 기자 = “있는 아기는 수명장수, 없는 아기는 탄생발원. 건위곤명 이 댁전에 아들을 낳으면 효자 낳고, 딸을 낳으면 열녀를 낳아 여러 자손을 곱게 길러 백대천손 만대유전 자손창성에 부귀영화 누리소서. 명복이요, 에헤. 살더라도 말씀드린대로 살게 하소서.” 

  유지숙 명창이 돌아온다.

  5월의 브랜드 공연으로 자리잡은 ‘기원과 덕담’을 선보인다. 시대의 아픔을 위무하고 삶의 안녕을 염원하는 전통소리의 명맥을 잇는다. 북녘 땅의 무가와 민요, 강화도의 고사소리, 불교의 화청, 민요의 끊어진 숨을 되살리는 현장이다.       


  명창 유지숙(54)은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악장 겸 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전수조교다. ‘서도소리’하면 유지숙이다. 이북에서도 쉽게 접하기 어려워진 소리를 들려준다. 전통무속, 위로와 척사, 그리고 축원이 녹아들며 민요화한 불가도 노래한다.

‘기원과 덕담’은 반메기 비나리로 출발한다. 불교 화청소리의 하나다. 민요선법으로 쉽게 풀었다. 반은 대중적, 나머지 반은 불교적이어서 반메기다. 부처의 덕으로 모든 액운을 몰아내고 가정의 안녕과 개인의 평안을 빈다. 유지숙의 축원은 청중을 향한다. “축원이 갑니다. 덕담 가요. 건고곤명 모씨 댁에 문전축원 고사덕담, 지극정성으로 여쭌뒬랑, 석산가산에 꽃이 피고 힘든 나무 꺾어지리요. 이러니 저러니 할지라도 밤이 되면은 불이 밝고 낮이 되면은 물이 맑아….”

 산염불, 개성산염불, 잦은산염불이 이어진다. 황해도의 대표적인 민요가 산염불이다. 민요로 변하면서 불교색을 빼고 가사를 세속화했다. 개성에서는 부녀자가 살아서 북성길을 넘지 못하면 사후에 고해가 크다고 북쪽에 성을 쌓는다. 이 성을 돌아 남쪽 길로 돌아오면서 부른 민요가 “산이로구나~”하는 후렴구의 개성산염불이다. 일상을 은유한다. 이별이나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심정, 외로움 따위다. 산염불과 빠른 장단의 잦은산염불을 같이 부르면 긴염불이 된다.

  다음은 회심곡과 승무(김일지)다. 회심곡은 화청이나 고사염불과 혼동되기도 한다. 평염불 중 덕담 부분을 제외한 부모은중경을 따로 떼어 만든 곡이다. 깊은 발디딤과 함께 긴 한삼을 천천히 뿌려 모으며 웅크리고 다시 펼치는가 하면, 일순간 모아 제치며 비상하는 장삼놀림 춤이 승무다. 전통춤 핵심의 결집체다.

평안도 다리굿 중 고축, 긴염불, 자진염불, 십종장엄, 술타령, 돈타령, 만수받이푸념, 십이푸념왕생축원, 노래전별푸념도 감상할 수 있다.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망자 천도굿이 평안도 다리굿이다. 긴염불, 술타령 등 깊고 시원하면서도 구성지고 애달픈 소리가 특징이다. 유지숙 말고는 부르는 이가 많지 않다.

  강화도 고사소리는 곧 경·서도 민요의 진한 맛과 멋이다. 황해도와 인접한 강화도의 소리에는 구성진 서도소리와 흥겨운 경기민요가 혼재한다. 독특하고 아련한 정서를 간략하되 일정한 장단에 얹어 부른다. 정월에서 섣달까지 열 두 달의 액운과 살을 풀어내는 달거리 또는 월령가의 하나다. 굿보다 규모가 작은 무속의례인 고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다. 강화도는 유지숙의 고향이다. 정착 실향민이 많은 곳이다. 이들이 북의 고향을 그리며 부른 한반도 북서부 민요를 유지숙은 그렇게 운명처럼 만났다. 오복녀(1913~2001) 명창의 수제자로 서도소리를 갈고 닦았고, 어느덧 ‘서도소리의 정석’으로 통하기에 이르렀다.

  배연신굿, 철몰이굿 등 황해도의 굿은 다양하다. 유지숙은 이 가운데 부정거리, 영부정, 쑹거타령 등 흥겨운 소리들만 모아 선사한다. 악기들이 흥을 더한다.

유지숙과 출연진 30여명이 함께하는 개성난봉가, 양산도, 연평도난봉가가 마지막 무대다. ‘박연폭포 흘러가는 물은’으로 시작해 ‘박연폭포’라고도 불리는 개성난봉가, 경기민요 양산도, 바닷가 여성들의 갯벌 노동요인 연평도난봉가 등 경·서도 민요 퍼레이드다.

  유지숙 명창은 “황해도와 평안도의 무가를 새로 구성했다. 다릿발(무명천)을 굿당 밖에 걸어두는 대규모 진혼굿을 평안도에서는 다리굿이라고 했다. 이 다리굿에서 불리는 무가들을 새롭게 무대화한다. 아울러 망자천도 굿판에서 무당이 하는 노래가 아닌, 서도소리를 통해 평안도와 황해도의 무가가 재조명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유지숙의 ‘기원과 덕담’을 정통 무가 견학장소로 활용하는 무당도 상당수다.

  ‘기원과 덕담’은 공연명이면서 앨범명이다. 음반 ‘기원과 덕담’(2014)은 고사소리, 반메기비나리, 화청과 탑돌이, 축원경, 삼재풀이 등을 담았다. 그해 3월 프랑스 파리 ‘아리랑’ 콘서트에서 유 명창의 서도소리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이 계기다. 라디오프랑스 방송사의 오코라 레이블이 음반을 내자고 했다. 잔칫집에서 불린 즉흥선율도 푸짐한 흥겨운 닐리리타령, 그물에 걸린 명태를 털면서 부른 고기벗기는소리, 달구지를 몰고가며 부른 감내기, 씨를 뿌리며 부른 밟아소리, 한증막에서 땀을 흘리며 관음보살을 세면서 부른 관음세기 등 사라지다시피한 북녘 민요들이 CD ‘북한의 전통민요’(Corée du Nord: chants traditionnels)에 실렸다. 아르모니아문디 음반사가 60여개국에 유통하면서 세계인에게 남북민요의 실체를 알렸다. 2015~2016 한불상호교류의해 공식음반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공연 ‘기원과 덕담’은 2014년 이후 국내 3회, 해외에서 2회 무대에 올랐다. 2015년 일본 센다이 시민회관과 도쿄 고코쿠지(護国寺)에서 열린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공연도 유지숙의 ‘기원과 덕담’이었다.

 ‘기원과 덕담’뿐 아니다. 빅터유성기 음반의 신민요 야월선유가를 재구성, ‘유지숙의 서도소리’(1997)에 수록했다. ‘유지숙의 북녘소리: 토리’에는 굼베타령, 끔대타령, 산천가, 나물타령 등이 국악관현악단 반주에 맞춰 기록됐다. 북과 옌볜의 아리랑을 모은 ‘아리랑의 재발견: 구존동이’도 내놓았다. 죽었던 영천아리랑, 백두산아리랑, 단천아리랑이 되살아났다.

  평안도 향두계놀이(평안도 무형문화재 2호)를 복원한 주역 또한 유지숙이다. 평안 지역 마을공동체인 향두계의 민속놀이다. 씨고르기~추수 과정의 풍요를 빈다. 제54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2013) 대통령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기세 좋은 발성, 저음과 고음을 넘나드는 맑은 음색, 서도소리 특유의 애잔한 감성에 탁월한 표현력까지 더해진 유지숙의 소리는 18일 저녁 8시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한국문화의집(KOUS)에서 들을 수 있다. 

  이날 여섯 번째 ‘기원과 덕담’ 공연은 반메기비나리-회심곡-산염불 순으로 염불과 화청이 민요화되는 단계를 입증하는 무대라는 점을 특히 주목해야 한다.

  주관 향두계놀이보존회, 연출 전기광, 음악감독 최경만(서울시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 삼현육각 예능보유자), 안무 진유림, 사회 이상균, 전석 2만원. 정아트엔터테인먼트 02-564-0269

  reap@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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